지금부터 세상은 이야기로 만들어졌다 책소개 책추천 북리뷰 서평 독후감 관련 포스팅을 시작하겠습니다. 아래 글을 통해 책소개뿐만 아니라 다양한 서평 독후감 제작에 도움이 되시기 바랍니다.
세상은 이야기로 만들어졌다 책소개
원시 시대 동굴 속에서 나누던 이야기에서부터 디즈니의 애니메이션까지, 『일리아드』와 같은 고전에서부터 정치인 트럼프의 거짓말까지. 강력한 이야기는 삶을 구할 수 있고, 투표 결과를 좌우할 수 있으며, 사회를 바꿀 수 있다. 또한 전쟁을 일으킬 수 있고 사람들을 영원히 반목시킬 수도 있다. ‘이야기하는 원숭이’인 우리들은 이야기의 힘 덕분에 진화적 이점을 얻고, 문명을 이룰 수 있었다. 2022년 독일 독서문화진흥재단에서 선정한 최고의 논픽션 중 한 권에 들어갔던 이 책에서 저자들은 이야기가 지닌 상반된 영향력을 추적한다. 그들은 어떤 이야기가 오늘날 우리를 위험에 빠뜨리는지 그리고 우리 세상을 유지하기 위해 새로운 이야기가 왜 절박한지를 잘 풀어놓고 있다.
발췌문
여러분이 37,000년 전 호주 초원 지대의 원주민이라고 잠시 상상해보라. 조상 때부터 사냥터였던 땅에 갑자기 화산대가 형성되고 곧 불과 용암을 내뿜기 시작한다. 불과 몇 달 만에 원주민의 고향은 그 모습이 완전히 바뀌고 수많은 동족이 목숨을 잃는다. 이제 여러분은 세상이 예측할 수 없고 가끔은 끔찍한 놀라움으로 가득 차 있고 이치에 맞지도 않으며 아무도 설명하지 못한다는 사실, 죽을 때까지 이런 일이 계속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든지 아니면 이야기를 만들어내든지 둘 중 하나다. 나는 다양한 변형을 할 수 있고 여러 다른 존재가 될 수 있으며, 우리는 모두 여러 존재가 되어 기능적인 정체성과 관계를 서사적으로 함께 형성할 수 있다. 달리 표현하면 우리는 내면에서 연극을 하는 원숭이 무리이다. ‘스토리Geschichte는 이야기되는 내용을 가리키며, 이야기Erzahlung는 이것이 어떻게, 어떤 수단과 동기로 행해지는지를 나타내며, 내러티브 Narrativ는 왜 그리고 무엇을 위해 이야기가 전해지는지를 결정한다. 예를 들어 나무 열매를 따 먹은 여자 때문에 낙원에서 추방당한 남녀에 대한 스토리의 경우 이야기는 유혹, 죄책감, 추방에 대한 것이지만 이러한 이야기의 지배적 내러티브는 다음과 같다. 즉 ‘여성은 위험하다.’ (중략) 또는 신약성경을 예로 들 수 있다. 스토리 : 목수의 아들에서 한 종파의 지도자가 된 사람이 유대인 체제와 로마의 통치 세력에 맞서다가 결국 그로 인해(그리고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힌다. 이야기 : 종교에 기반을 둔 전형적인 메시아. 내러티브 : 이타심, 자비, 지혜를 통한 초월. 스마트폰으로 말미암아 호모 나랜스는 그 어느 때보다 무수한 자신의 이야기를 생산할 수 있는 초강력 이야기꾼이 되었다. 이처럼 초강력 이야기꾼이 된 인간은 끊임없이 구성하는 자아에 의미를 부여하고 이를 외부를 향해 일관되게 유지하려고 더 많이 애쓴다. 우리는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끊임없는 자기관찰을 통해, 또한 보이지 않는 무수한 타인의 인지에 비추어 봄으로써 우리 자신이 되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서사된 자아가 된다. 그리고 이러한 서사된 자아에 담긴 허구성은 타인의 자기 서사와 경쟁을 벌인다. 개인의 통제에 초점을 두는 것은 소위 기본적 귀인 오류와 결부되어 있다. 말하자면 타인에게 나쁜 일이 일어났을 때 우리는 그 책임이 그들 개인에게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우리에게 나쁜 일이 일어날 때는 우리가 처한 상황에 책임을 돌리는 경향이 있다. 왜 우리는 유토피아보다 디스토피아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을 더 좋아할까? 디스토피아가 더 흥미진진하기 때문이다. 유감스럽게도 모두가 모든 것을 가진 유토피아는 지루하다. 그리고 유토피아는 흥할 수도, 망할 수도 없으며 그저 존재할 수만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야기를 계속해서 듣고 싶다. 그 이유는 바로 이야기가 어떻게 끝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세상은 이야기로 만들어졌다 감상문
우리는 왜 이야기를 할까? 그리고 왜 흥미진진한 이야기에 빠져들까? 저자들의 답은 분명하다. 이야기는, 특히 뇌리에 박히는 강력한 이야기는 인류가 생존하는 데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저자들에 따르면 우리는 ‘슬기로운 사람’이라는 뜻의 호모 사피엔스라기보다는 ‘이야기하는 사람’인 ‘호모 나랜스Homo narrans’라고 해야 더 알맞다. 우리는 아주 가끔씩만 슬기로울 뿐이지만, 이야기는 항상 하기 때문이다. 그럼 이야기는 어떻게 생존에 도움이 되는 것일까? 선사 시대에 한 사람이 자신이 사냥 중에 겪은 위기의 순간을 부족 사람들에게 이야기해주는 상황을 생각해보자. 그는 거대한 살쾡이를 마주쳤다. 살쾡이가 공격하자 그는 나무와 돌로 만들어둔 창을 살쾡이 쪽으로 던졌다. 창은 부러지고 그는 팔에 상처를 입었다. 창 없이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는 도망친다. 저 뒤에 있는 나무 위로 도망치려 하지만 다친 팔로는 나무 위로 올라가지 못한다. 그는 폭포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계속 달려간다. 그는 절벽 끝에 다다랐고 살쾡이는 그를 갈기갈기 찢으려고 한다. 공격할 힘도 없이 녹초가 된 그는 죽음의 두려움을 이기고 절벽 아래로 뛰어든다. 몇 초간의 자유 낙하 끝에 그는 차가운 수면 위로 떨어진다. 그는 죽었을까? 아니다. 그는 깊은 물에서 모습을 드러내며 숨을 헐떡인다. 해냈어! 부족 사람들은 흡사 오늘날의 액션 영화와 같은 이런 탈출 스토리를 흥미진진하게 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이런 교훈과 정보도 얻었을 것이다. 이를테면 적과 만났을 때 무기에만 의지해서는 안 되고 폭포 아래 물속은 비상시에 뛰어들어도 될 만큼 매우 깊으며 절벽에 뛰어내리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등의 중요한 정보 말이다. 말하자면 이야기는 성공적인 생존 전략과 정보를 전달하는 훌륭한 도구였다. 용기를 내 적과 맞서 싸운 이야기, 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이야기, 함께 힘을 모아 역경을 극복한 이야기 등은 무엇이 바람직하고 바람직하지 않은지를 사람들에게 알려주었다. 부족 중 한 사람만이라도 이를 따라 하고 그것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그 부족은 더 안전해지고 성장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야기는 선사 시대의 ‘소셜 콘텐츠Social Content’였으며 감정적 소모가 클수록 더 많이-오늘날의 용어로 표현하자면-공유Share되고 리포스트Repost되었다. 말하자면 우리의 생존은 삶에 필수불가결한 이러한 정보를 전달하는 형식이 얼마나 훌륭한가에 달려 있었다. 달리 표현하면 더 훌륭한 이야기를 가진 부족이 생존 가능성이 더 높았다. 1945년 출간된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에서 조지프 캠벨이 분석한 수천 개에 이르는 전 세계 신화와 전설은 예외 없이 난관을 극복하고 성공에 이르는 패턴을 가지고 있었다. 켈트와 아랍 신화, 인도와 그리스의 반신반인(半神半人), 그뿐만 아니라 문화적으로 독자적인 미국 원주민이나 토착민의 고대 이야기에서도 항상 같은 도식이 발견된다. 붓다나 예수 그리고 마호메트의 이야기도 정확히 이런 서사를 따른다. 캠벨은 이를 인간에게 내재한 ‘서사 유전자Narrative Gene’로 처럼 이해했다. 실제로 세상의 다양한 이야기들에는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공통의 서사 유형이 존재한다. 2018년 버밍엄 대학교의 행동경제학 및 데이터과학과의 포그레브나 교수가 이끄는 연구진은 6,000편의 영화 속에 담긴 감정 곡선을 분석했는데 6,000편의 영화는 여섯 가지 형식(더 크게 보면 세 가지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헐리우드 영화든 발리우드 영화든 K-무비든 마찬가지다. 어떤 범주들일까? 첫 번째 범주에는 가난뱅이에서 백만장자가 되는 이야기(‘누더기에서 재물로’), 또 하나는 거꾸로 주인공이 끝없이 추락하는 이야기(‘재물에서 누더기로’)가 있다. 두 번째 범주에는 누군가 구덩이에 빠졌다가 탈출하는 이야기(‘맨인홀Man in Hole’) 또 하나는 반대로 누군가 한참 상승한 후에 끝없이 추락하는 이야기(‘이카로스’)가 있다. 세 번째 범주에 우리가 익히 아는 신데렐라 이야기가 있으며 그 반대편에는 처음에는 강한 타격을 경험하고 중간에 상승하지만 결국 비극을 맞는 오이디푸스 이야기가 있다. 그러면 사람들은 어떤 영화를 선택했을까? 가장 큰 수익을 거둔, 가장 많은 관객의 선택을 받은 스토리는 누군가 구덩이에 빠졌다가 탈출하는 ‘맨인홀’ 형식이었다. 신데렐라 스토리가 바로 뒤를 이었다. ‘수익’과 ‘평가’는 별개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관객들의 최고의 찬사를 받은 형식은 어떤 것이었을까? ‘가난뱅이에서 백만장자’가 되는 형식이었다. 영화 속에서 끝없는 추락을 경험하게 하거나 마침내 비극으로 끝나는 작품은 대개 관객들의 선택이나 찬사를 받는 경우가 드물었다. ‘백만장자에서 가난뱅이’로 이동하는 스토리는 특히 성공적이지 못했다. 사람들은 대체로 해피엔딩을 사랑한다. 영화나 소설 속 이야기에만 익숙한 서사 구조가 있는 것은 아니다. 성공하는 스토리의 뼈대, 즉 마스터 플롯에는 경쟁, 구원, 탐색, 변신, 복수, 약자, 러브 스토리, 추적, 성인, 자기희생이 끊임없이 반복된다. 허구이든 사실이든, 혹은 뉴스, 교육, 광고를 비롯하여 정보가 교환되는 모든 곳에서 이런 서사 구조가 발견된다. 2018년 6월 12명의 태국 유소년 축구단원이 물이 찬 동굴에 갇혔다. 이들의 이야기가 언론을 타기 시작하자 전 세계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소년들을 응원했다. 언론의 집중적인 보도는 그들 모두가 생존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게 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은 모두 생존해 돌아왔다. 소년들이 갇혔던 동굴은 이제 매년 100만 명이 찾는 관광 명소가 됐다. ‘구원’ 서사의 마스터 플롯이 잘 작동한 사례다. 반면에 같은 해 예멘 내전 중 굶주림으로 사망한 5세 미만의 어린이 85,000명에 대해서는 훨씬 적게 보도되었다. 이렇게 상반된 보도 횟수의 이유는 명백하다. 이례적 사건이 지속적인 위기 상황에 비해 뉴스 가치가 높다는 요인 외에도 예멘 어린이의 운명이 서사적 측면에서 너무 추상적이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예멘 어린이들을 주인공으로 연출할 수 있을 만큼 상징적인 개별적 사건이 없었고 위기 상황이 너무 애매모호했다. 예멘 어린이 이야기로는 태국 소년을 동굴에서 구출하는 것과 같은 해피엔딩을 기대하면서 확실한 저널리즘 연출을 전개하기가 불가능했다. 아무리 ‘뉴스’의 기능에 대해 따따부따해도 이것이 현실이다. 지금도 큰 재난이나 재해가 일어나면 곧이어 언론은 영웅 혹은 의인 찾기에 골몰하며, 독자는 사건의 원인이나 발단보다 여기에 더 큰 관심을 보일 때가 많다. 또 ‘경쟁’ 서사는 모든 형태의 선거 운동에서 보이는 표준 서사며, ‘변신’ 서사는 다양한 비포&애프터 쇼에서 나타난다. ‘약자’ 서사는 <슈퍼스타K>나 <미스터트롯> 같은 경연 프로그램의 성공 보증 수표며, 정치인에게도 그렇다. 아웃사이더가 한순간에 출세하는 이야기를 모두가 좋아한다. 하지만 이런 ‘서사’가 정치인이나 정치에 이용되기 시작하면 또 다른 상황이 전개된다. 음모 서사가 대표적이다. 한 가정의 아버지였던 남자는 자동 소총으로 무장하고 피자 가게에 쳐들어갔다. 그는 그 피자 가게의 지하실에서는 미국 민주당 의원들이 아동을 상대로 가학적인 조직적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고 믿었다. 힐러리 클린턴을 비롯한 다른 유명 정치인들이 할리우드 스타들이 노화를 방지하기 위해 사용하는 대사물질인 아드레노크롬을 얻기 위해 어린이를 납치하여 고문한다는 것이다. 이 남자는 큐어넌QAnon 음모론을 믿는 사람이었다. 큐어넌은 ‘딥 스테이트Deep State’라는 숨겨진 권력 집단이 미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으며, 이런 비밀을 폭로하고 맞서 싸우는 것이 ‘영웅’들의 역할이라는 서사를 퍼뜨렸다. 피자 가게에 쳐들어간 남자는 그런 영웅이 되고자 했다. 사실 우리는 이런 (음모) 서사에도 쉽게 빠져든다. 정치인과 기업인들은 그리고 때때로 음모론자들은 이런 상황을 교묘히 이용하며 ‘내러티브’ 전쟁에 뛰어든다. 노예제도를 정당화하기 위해 백인들은 자신들이 다른 인종을 지배해 문명으로 인도해야 한다는 서사를 퍼뜨렸다. 나치는 중세부터 내려온 ‘사악한 유대인’의 이야기를 활용했다. 더 멀리 갈 것도 없다. 일제강점기 간토 대지진 당시 만들어진 ‘불령선인’ 내러티브 때문에 6천 명(추정)이 넘는 조선인들이 일본 자경단에 의해 목숨을 잃었고, 북한이 댐을 터뜨려 남한을 초토화하려 한다는 ‘평화의 댐’ 사건에는 정보기관뿐만 아니라 소위 ‘전문가’들까지 전면에 나서 국민을 현혹시켰다. 일부 기업인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바나나 수출을 독점하기 위해 민의에 의해 선출된 과테말라 정부를 공산주의자로 몰아버린 유나이티드 프루트 컴퍼니 이야기나 여성들의 담배 소비를 촉진하기 위해 ‘자유의 횃불’ 이야기를 덧붙인 담배 회사의 이야기는 ‘선전’ 혹은 ‘홍보’의 고전이 되어버렸다. 이야기는 현실을 왜곡하고, 누군가의 이익을 위한 방향으로도 사용될 수 있다. 그렇다면 이야기가 우리를, 우리의 미래를 좀 더 좋은 쪽으로 바꾸는 건 어떻게 가능할까? 이 책에서 저자들은 우리에겐 미래를 위한 새로운 서사의 필요성을 이야기한다. 대표적으로 기후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서사를 들 수 있다. 저자들은 오늘날 기후 위기가 잘못 이야기되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다. 예를 들어 생태와 경제가 서로 대립한다는 ‘경쟁’ 플롯이나, 기후 위기를 막기 위해선 우리가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한다는 ‘이카로스’ 플롯, 우리가 위기에 빠져 있고 탈출구가 없다는 절반의 ‘맨인홀’ 플롯 같은 것들이 기후 서사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이와는 다른 희망적인 서사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기후 위기에 맞서 싸우는 ‘영웅 그레타 툰베리’의 서사 같은 것 말이다. 그레타 툰베리의 뒤를 이어 집결된 청년 운동인 ‘미래를 위한 금요일Fridays for Future’은 이제 우리 시대의 가장 영향력 있는 운동 중 하나로 인식되어 각국에서 새로운 영웅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레타가 이끌어 온 길처럼 본보기가 되는 인상적인 이야기가 훨씬 더 많이 필요하다. 하지만 근본적인 변화는 우리가 자신을 서사 이야기, 즉 우리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만드는 것에서 시작된다. 우리가 인류로서 영웅 여정을 하고 있다고 본다면 어떨까? 무엇이 우리에게 경고를 보내고 우리를 움직이게 할까? 우리는 어디에서 우리의 부름을 거부할까? 기후 위기에서 혹은 코로나 팬데믹에서 나타나는 변화의 문턱은 어떤 것일까?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즉 원대한 목표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떤 근본적인 변화를 꾀하여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 저자들은 더 평화로운 세상을 그리는 우리의 능력, 그리고 그 세상을 위해 단결하는 능력, 즉 나쁜 과거에 대한 인식, 더 나은 미래에 대한 상상 그리고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우리의 열정에 주목한다. 오늘날 이러한 능력은 그 어느 때보다 더 필요해 보인다. 말하자면 우리가 이러한 능력을 재발견하고 유용하게 사용한다면 이는 진정한 변화가 될 것이라고 저자들은 말한다. 이 책은 그리스 신화에서부터 넷플릭스까지, 인류가 지나온 긴 이야기의 역사를 씨줄로, 그리고 시나리오 작가에서부터 정치인까지 마침내는 범부에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활용하는 이야기의 내용을 날줄로 이야기에 기대어 사는 모든 이들을 위한 하나의 ‘텍스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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